← 아카이브

기록보관소 열람 규정 제1조 — 본 기록은 허구입니다

18PLAUSIBILITY
순수 환상

Journal of Plausible Fiction · RG-2026-005

훈민정음 실행 체계 재검토: 15세기 조선의 튜링 완전성에 관하여

장영실 기념 계산기술사연구소 (평행세계 지부)

초록 (ABSTRACT)

본고는 정통 11년(1446) 반포된 훈민정음이 표음문자 체계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형식언어였다는 가설을 검토한다. 해례본의 제자해(制字解)를 명세서로 독해하면, 초성 17자는 연산자, 중성 11자는 레지스터, 종성 규칙은 흐름 제어에 대응한다. 특히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을 재귀 호출 선언으로 읽을 경우 체계 전체가 튜링 완전성을 획득함을 보인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 이 유명한 서문은 문자 창제의 변이 아니라, 중국제 연산 체계와의 호환성 포기 선언이었다.

1. 서론

세종이 만든 것이 '문자'였다는 통설은 우리 세계선의 기록에만 부합한다. 본고가 다루는 평행세계 — 이하 세계선 β — 에서 훈민정음은 백성이 읽고 쓰는 도구가 아니라, 백성이 실행하는 도구였다.1

서문을 다시 읽자.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세계선 β의 언어학자들은 '펴다'를 전개(unfold), 즉 평가(evaluation)의 의미로 독해한다. 백성에게 부족했던 것은 표기 수단이 아니라 연산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2. 제자해의 명세서적 독해

제자해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고 기술하지만, 세계선 β의 독해는 다르다.

  • 초성 17자 = 연산자 집합: ㄱ은 값의 취득(어금니가 무는 모양), ㅅ은 분기(이가 갈라지는 모양), ㅁ은 저장(입술이 닫히는 모양)이다.
  • 중성 11자 = 레지스터: 천(·)·지(ㅡ)·인(ㅣ)의 삼재는 각각 누산기, 기억 공간, 입출력 스트림에 대응한다.
  • 음절 블록 = 함수 합성: 초·중·종성을 모아쓰는 규칙은 연산자-피연산자-후속 처리를 한 블록으로 묶는 문법이다. 세계선 β에서 '글자를 모아쓴다'는 말과 '함수를 합성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3. 종성부용초성과 재귀

해례의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는 규정을 보라. 출력부에 연산자를 재대입할 수 있다는 이 선언 하나로, 체계는 루프와 재귀를 얻는다.2 세계선 β의 계산기술사가들은 이를 동방 최초의 재귀 호출 선언으로 기념하며, 매년 한글날 대신 '컴파일절'을 쇤다.

4. 역사적 방증

세계선 β의 기록에 따르면:

  1. 집현전은 학문 기관이 아니라 컴파일러 유지보수 조직이었다.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보수적 문화론이 아니라, "중국제 레거시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깨진다"는 기술 부채 경고였다.
  2. 언문청(諺文廳)에서 간행된 『용비어천가』는 서사시가 아니라 회귀 테스트 모음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새"는 안정성 검증 항목 제1번이다.
  3. 측우기·자격루 등 세종대 기계 장치의 폭발적 등장은, 실행 언어가 먼저 존재했다는 가설 없이는 설명이 어렵다. 장영실은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최초의 풀스택이었다.

5. 결론 및 한계

세계선 β에서 조선은 15세기에 소프트웨어를, 19세기에 증기 하드웨어를 얻었다. 그 이후의 역사는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관련 기록은 열람 등급이 다르다).

본 가설의 치명적 한계는 물론, 우리 세계선의 훈민정음이 명백히 문자라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두 세계선 모두에서 참이다: 28자로 무한을 표현하는 체계를 한 사람의 재위 기간에 설계하고 배포했다는 것. 어느 세계선에서든 그것을 공학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본 기록은 가상 역사(AH)로 분류된 허구이며, 국어학·역사학의 통설과 무관하다.

Footnotes

  1. 세계선 β의 존재 증명은 본 보관소의 다른 기록(RG-분류 대외비)을 참조하라. 물론 그 기록도 허구다.

  2. 우리 세계선의 훈민정음학계는 이 규정을 음운론적 경제성으로 설명한다. 그쪽이 맞다.